나는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가끔 아내가 이렇게 물어본다. "오늘은 공부 잘 되었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나 공부 안하고 일했는데?" 연구와 공부는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공부는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와 공부는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존 지식" 없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자에게도 공부(학습)은 필수 덕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책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원저: Make it stick: the science of successful learning)"은 인지 심리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최적의 공부법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법의 기본은 반복이다. "7회독 공부법" 이나 "3회독 공부법"과 같이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 공부의 왕도라고 믿고 있다. 이 책은 "반복하면 통달할 수 있다." 기존 공부법의 통념을 깨버린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게 집중적으로 연습하면 지식을 빨리 습득하게 되므로 이러한 믿음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연구에서 분명히 밝혀진 점은 집중적인 연습을 통해 익힌 지식이나 기술이 일시적이며 금방 사라진다는 사실이다._26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교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영어단어를 백번씩 써서 제출하는 일명 깜지 숙제를 많이 내 주었다. 계속 영어 단어들을 써내려가면 잘 외워질 것 같았지만, 사실 내 손가락만 아프고 머릿 속에는 남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단어를 쓰다보니 머리는 멈춰있고 컨베이어 벨트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러한 느낌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내용에 익숙해짐에 따라 완전히 통달했다는 느낌이 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일종의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_27
다시 읽기, 의지, 반복의 힘에 대한 믿음은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 무언가를 계속 반복하기만 해서 기억에 각인하기는 힘들다. 그런 작전은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할 때까지 머릿속에 담아두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학습 효과를 오래 지속하는 데는 소용이 없다._32
저자는 메타 인지(Meta-congition)가 중요하다고 말하다. 메타인지란 상위 인지라고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경계해야할 일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조차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배웠다는 착각은 메타 인지, 즉 자신이 무엇을 아는 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타 인지를 높여서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저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공부법을 요약하는 키워드는 1) "시간 간격"을 두고 "인출"하기 2) 학습 내용을 단원별이 아닌 여러 단원 내용을 "교차"해 가면서 연습하기 3) 상황들을 "변화(변주)" 시키면서 연습하기다. 저자가 말하길 "배우기 어려울수록 머릿속에 오랫동안 깊이 남는다" 고 한다. 여기서 시간 간격을 두고 인출하라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지식을 장기 기억에 새겨넣으려면 통합과정이 필요하다. 기억 흔적(memory trace, 새로운 지식에 대한 뇌의 표상)을 강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사전 지식과 연결하는 이 과정은 몇 시간 내지 며칠에 걸쳐 일어난다. 속사포처럼 몰아치는 연습은 단기 기억을 이용한다. 하지만 학습이 오래 지속되려면 심리적 연습과 더불어 통합 과정이 일어날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간격을 둔 연습이 더욱 효과적이다. 약간의 망각 후에는 지식을 인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지므로 기억을 강화하고 통합을 다시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_95
즉, 시간이 지난 후 학습한 내용에 대한 망각이 일어난 뒤, 다시 학습한 내용을 되뇌일 때 생기는 어려움이 배운 지식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가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실제 자신의 일에 적용할 때, 그 지식을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여기서 다양한 경험은 시간 간격, 교차, 변화를 수반하는 경험이다. 예컨대 최고의 바둑기사가 되려면 수백번 수만번의 실전 연습이 필요하고 자신이 둔 바둑에 대한 복기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은 지식을 자기화 시키면서 견고한 바둑에 대한 심상 모형을 만들어 낸다.
시간 간격을 두고 공부하고 몇 번에 나누어 연습하는 간단한 변화만으로 학습과 기억을 강화하며 습관 강도를 높일 수 있다. 연습이 생각 없는 반복이 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적어도 망각이 일어날 정도는 되어야한다. 약간 잊어버려서 연습에 노력이 조금 더 들 정도라면 좋은 일이지만 너무 많이 잊어버려서 인출할 때마다 새로 배우는 셈이 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하루를 사이에 두고 연습하는 것이 좋다. _123
박사 학위를 받고 학부생을 대상으로한 통계 수업을 맡은 적이 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내가 통계에 대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아주 간단한 통계 개념 조차도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통계 공부를 시작했다. 연구 프로젝트와 수업 준비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내가 강의할 내용을 머릿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려 보았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머릿속으로 하는 예행연습이었지만 수업을 진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습득한 내용에 대한 "인출"을 하는 하나의 좋은 방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러한 반추를 통해 "개념"과 "개념" 간 구조를 체계화 시킬 수 있었다. 쉽게 말해 통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저자도 이렇게 말한다.
머릿속으로 하는 예행연습도 간격을 둔 연습의 한 형태이며, 그것 역시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_147
간격 두기, 교차하기, 변화 주기가 야기하는 인출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지식을 앞으로 일상에 적용할 때 요긴하게 쓰일 정신적 과정을, 연습할 때 미리 겪어보는 것이다. 이런 학습 전략은 실제 경험의 난관을 모방한다는 점에서 ‘실전처럼 연습하면 연습했던 대로 실전에 임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며, 과학자들이 학습 전이(transfer of learning)라고 부르는 능력을 향상시킨다._164
저자는 좀 더 구체적인 학습 방법을 소개한다. 인출, 정교화, 생성이다. 인출은 최근 배운 지식을 반추하는 것을 말한다. 정교화란 새로운 지식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연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생성이란 핵심 내용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꿔서 표현해보거나 시각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독서 후기를 쓰는 것도 역시 "인출", "정교화", 그리고 "생성"의 과정의 일부다. 이 과정이 얼마나 학습에 영양을 미치는지 개인적으로 경험했다. 학부 때만 하더라고 영화나 책을 보면 항상 감상문을 썼다. 거창한 감상문은 아니었지만 짧은 몇 문단으로 내용을 요약하고 내가 느낀 감상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책과 영화 내용을 더욱 잘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을 들어간 이후부터는 이러한 과정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 거의 감상문을 쓰지 않았다. 지금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도 내 머릿속에 별로 남은 것이 없다. 내가 감상문을 쓰는 과정이 바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인출", "정교화", "생성"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작가 은유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생각이 명료해 집니다. 언어란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생각을 '형성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학습을 평가하는 단순한 잣대가 아니라 배운 내용을 기억 속에서 인출하는 연습이라고 본다면 학습을 위한 수단으로 시험을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_44
2019년 목표 중 하나가 LEED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예전부터 따려고 염두해두었던 자격증이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다. 또한 메타 분석법을 이용한 논문을 써보는 것도 올 해 목표 중 하나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학습해야한다. 그리고 학습법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한 공부법을 적용해 볼 생각이다. 방법론은 알게 되었으니 남은 것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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